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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의 추억
덕유산을 처음 오른 것이 겨울 이였다.1969년1월4일부터21일까지 한라산에서의 동계훈련등반을 마치고 전남광양에 사는 이평재회원 집에 가서 5일을 쉬었다. 도착해보니 광양유지의 집안이였다.도착한날밤 광양불고기집에서 배터지게 먹었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겨울철이라 일주일에 한번만 영업하는 목욕탕을 5일간 전세내어 매일 아침저녁 샤워를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광양만 바닷가에서 생굴을 양동이에 담아놓고 야전삽(군용 스픈)으로 퍼먹던일이며 송광사 관광이며 매일 진수성찬의 음식과 마주하며 일제 아카이녹음기앞에서 노래솜씨를 뽐내며(지금의 노래방시설의 전신이라고나 할까) 5일간 너무 호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서울로 올라갈 무렵 오영복형과 의기투합하여 둘이서 덕유산으로 향한 것이1월27일이였으니 꼭38년 전의 일이다. 당시엔 학교에서 방학이면 열차 할인 증을 발급해주었기에 주로 열차를 이용했었다.
광양에서 전주까지 가서 1박을 해야 했다. 당시 학생신분으로 모든 것이 여유가 없으니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식당을 찾아들었다 마음씨가 좋아 보이며 안채가 딸린 음식점을 골르고 골라 일부러 조금 늦은 시간에 들어갔다.
옛날부터 음식인심이 후한 전주에서의 저녁식사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제일 싼 백반을 시켰는데 어찌나 반찬종류가 많은지 배낭에서 코펠을 꺼내 반찬을 모두 담아 덕유산 등반식량으로 비축하고 국만 먹고 있으니 주인아주머니께서 반찬 한 상을 더 차려주시며 '부족하면 더 줄께'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의 입장을 말씀드리며 하루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니 식당 뒤켠에 있는 방을 내어주셨다. 방이 너무 작아 배낭을 밖에 내놓고 둘이 누우니 꽉 차는 방이다. 거기다 불까지 때주는 바람에 자다가 뜨거워서 잠을 못자고 냉수 한바가지를 떠다 방에다 뿌려 열을 식히고 잠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향하는데 당시의 시외버스 배차시간이 길고 비포장도로에다 진안이 그렇게 외진 벽촌인줄 몰랐다. 진안에서 장수를 거쳐 무주까지 갔다. 진안에서 왜? 장수를 거쳐야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버스가 서는 곳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 중 며누리와 시어머니가 많았던 풍경도 이채로웠다. 어디를 가는지 닭 목아지가 삐쭉 나온 보따리며 바리바리 싸맨 보따리를 들고, 메고, 이고, 잘있거라 잘댕겨오시요 등등 분주하고 떠들썩한 버스정류장의 풍속이 얼마나 정이 넘쳐나는 풍경인지 38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그리워지는 정경들이다. 무주 진안 장수를 가리켜 일명 무진장이라는 굉장하다는 의미의 명사가 탄생했다니 무주까지 정말 첩첩산중의 여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여정 끝에 무주에 도착하니 구천동 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면 하루를 묵어야했기에 구천동 까지 걸었다. 내친김에 백련암(지금은 백련사)까지 올랐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스님은 안계시고 童子僧 셋이서 절을 지키고 있었다. 사정이야기를 하고 잠을 청하니 주지스님이 안 계시어 안 된다는 동자들을 오랫동안 설득시켜 법당 우측에 있는 방을 쓰기로 했다. 어쩌면 전주에서 잤던 식당의 골방 크기와 똑같은지 배낭은 내놓고 잠을 자게 되는데 법당 안이 하도 소란하여 동자들이 싸우나하고 문틈으로 엿보니 이게왠일?---당시 지금의 프로축구만큼이나 프로레스링이 인기가 있던 시절 이였는데 동자들이 레스링으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그것도 신성한 법당 안에서 말이다. 문틈으로 엿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들짝 놀래던 동자승들의 모습도 생생하고 심판을 봐주며 함께 놀아 주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밤새 어찌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등반시간을 조금 늦추고 동자들과 함께 눈을 치우고 스노우블록이 아닌 눈을 굴려서 쌓아올려 스노우홀을 만들어 동자들에게 집 한 채를 선물한다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모습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이른 점심을 먹고 비상식과 방한복만 넣은 써브쌕만 메고 향적봉을 향했다. 구름 한점 없이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도 없어 땀께나 흘리면서 올랐다. 눈 깊은 곳은 허리까지 빠져가며 정상 향적봉에 올라서니 겨울의 한라산에서 맛볼 수 없던 동서남북으로 부드럽게 뻗은 능선의 온화함이 나를 빠져들게 한다.
1월28일 친구들과 덕유산엘 갔다 금요일 많은 눈이내려 설화가 환상적인 향적봉에 올라 생각해보니 겨울의 덕유산을 오른지 만 38년이되는 날이였다. 참으로 감회가 깊었기에 추억의 흔적을 남겨보았다.
1969년의 사진설명:
* 상의는 동대문표 실밥뭉치와 막솜으로 된 누비옷
(당시엔 브랜드옷이 없었는데 동대문 영삼사에서 만들어낸 파카였다)
* 바지는 하루종일 미싱과 씨름하며 내가 직접만든 니카바지:그 시절엔 등산복은 니카바지(Nicker-bocker)였다.
* 숏스패츠도 내가 손수 만든것이고 장갑은 털실사다 어머니가 짜주신 벙어리장갑에
* 신발은 송림양화점의 비브람
* 고글은 지금 있으면 골동품
* 아이젠과
* 피켈은 모래내 대장간에서만든 국산품제1호 오영복표 피켈
처음 만든피켈에 오영복 吾자마크가 있었으나 나중 모래내금강으로 MK마크로 국내 제일의 기업으로 번창하였었다.
2007년의 사진설명
* 상의는 마운틴하드웨어의 고어텍스 쟈켓에
* 장갑은 항가리제 순모장갑
* 신발은 수입품 Reichle
* 고글은 피오레가르텡 짝퉁
* 피켈대신 스틱은 독일제 레키
* 아이젠은 배낭속에...
38년간 산천은 의구하되 껍질만 바뀌었구나..ㅎ |